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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초보의 독서록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 실천을 위한 질문과 토론 Chapter 1 - Q1 ~ Q4

by 디어두어 2024.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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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책의 과제라고도 볼 수 있는
'실천을 위한 질문과 토론' 부분을 블로그에 올려보고자 한다.

Q1. 돈에 대해 가난한 아버지와 같은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는가?

거의 대부분이다.
저자가 9살 때 쯤, 부자 아빠로 부터 첫번째 교육을 받았을 때,
부자 아빠가 저임금을 주고 자신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에 분노했고,
그에 대해 부자 아빠에게 항의하러 갔을 때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리게 하며 쉽게 만나주지 않아
말 그대로 꼭지까지 화가 폭발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내 모습과 오버랩 되어 보였다.
직장인으로 살아온 대부분의 날들에 그런 잔잔한 분노를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며 살아왔다.
난 늘 내 자신을 '돈 못버는 용병' 이라고 불렀는데,
사랑하는 고향을 떠나 서울, 경기도로 와서
월세를 내고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벌어가며 사는 내모습이
타지에서 용병생활을 하지만, 돈은 못버는 용병 같았기 때문이다.

Q2. 부자 아버지는 진정한 배움에는 '활력'과 '열정', 그리고 '불타는 욕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신의 삶에서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거기서 얻은 잊지 못할 한 가지 교훈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 벌써 막히는 질문이 나와버렸네.
'얼마만큼' 불타는 것일까.. 흠...

나는 아마 영어회화가 아닐까 싶다.
내 첫 직장 생활을 외국계에서 시작을 했다.
입사 당시 내 토익 점수는 780 점대 였고, 오픽은 IM2 쯤 되었던 것 같다.
팝송이나 미드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라 고등학교 때 영어 1~2등급은 가뿐히 받았었는데
토익, 오픽 등 공인인증 성적은 그만큼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영어를 잘한다' 라는 근거없는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업무를 시작한 날, 배정된 부서에 자리가 부족해 마케팅 부서쪽에 한동안 앉게 되었다.
첫날부터 주위 사람들이 영어를 쏼라쏼라 무슨 교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험 영어나 그럭저럭인 수준으로 할 뿐, 외국인과 제대로된 대화 한번 해보지 못했던 나는
그날부터 누구나 다 아는 'Hello' 도 부끄러워서 내뱉지 못하게 되었다.
기가 제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회사 대다수는 영어를 그 정도로 하지 못하는데
내가 배정된 곳이 하필이면(?)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 옆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게, 필리핀에서 20년을 산 사람, 미국 유학을 오래 다녀온 사람들 옆자리에 내가...

일을 시작하고 한달도 안되었을 때였나?
부장인 팀장님이 나에게 해외 본사 직원의 주말 서울 나들이를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 때 나는, '나는 영어 회화를 못하는 사람' 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제가 영어 스피킹을 잘하지 못하는데 할 수 있을까요..."
라며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여 버렸다. 하필 그것도 외국계 회사에서.


그날 이후로 팀장님은 나를 영어를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고
내가 영어로된 회사 문서들을 매일 읽어야만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고,
해외 지사의 외국인 동료들과 매일 이메일 소통을 하고 있고,
고객사에도 영문으로 대답을 하는 일을 하고 있고,
리스닝은 대부분의 직원들보다 잘해서 본사와의 미팅에서도 잘 이해하고 직원들에게 내용 공유를 함에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란 인식은 퇴사할 때 까지 바뀌지 않았다.

그 회사는 신입은 공채든 아니든 무조건 인턴으로 시작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제도의 회사였는데,
100% 정규직으로 채용할 직원만을 그 회사 소속의 인턴으로 뽑는 회사였다.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을 직원들은 맨파워업체를 통해 고용을 했었다.
나는 그 회사 소속 인턴으로 입사했음에도
그 회사에서 최초로 정규직에서 떨어진 직원이 되었다.

지금에야 이 글을 쓰면서 너털웃음만 날 뿐이지만,
당시에는 2~3일 정도는 앉아서 일하다가
모니터를 보며 조용히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슬쩍 닦으며 일했다.

회사를 그만둬버릴까 생각도 했는데
다른 능력을 증빙하며 결국엔 정규직이 되었다.
그래도 어쨋든 퇴사할 때 까지 영어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은 변화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영어회화에 한이 맺혔던 것 같다.
왜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Hello' 조차 못하는 것인가.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하며 생각했던 것은
내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영어회화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리스닝은 토익 만점, 수능도 만점,
리딩에도 큰 문제 없고
라이팅에도 큰 문제 없이 일하고
영어를 좋아하고 잘했던 나인데
스피킹 하나 못해서
이렇게까지 인생이 고달파 질 순 없다.

그거 하나 때문에 영어 못하는 사람 취급 받으며 평생 살 순 없다.
그리고 나는 영어 컨텐츠를 너무 좋아하는데 영어를 잘하고 싶다.
영어로된 좋은 컨텐츠들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고, 내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

이게 내 마음이었다.
이것이 불타는 욕망 아니었을까 싶다.

회사를 그만두고 며칠내에 필리핀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났고
스파르타식으로 나를 가둬놓고 외출할 수 없는 어학원에 들어가서
하루 8시간을 스피킹으로만 시간표를 만들어서 2달을 하니
당시 어학원 내에서 가장 눈에 띄게 스피킹이 는 사람 1위가 나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스피킹 실력이 발전하였다.
'Hello' 도 못했던 사람인데 2달만에 어학원 랭킹 2위 정도로 되었으니까.

나는 그때, 29살에 늦깍이로 내 돈 벌어 어학연수 간 것이
오히려 대학생 때 목적없이 가는 것보다 훨씬 의미있고 결과도 좋다고 생각했다.


몇년간의 설움과 분노에 기반한 명확한 동기와 목표가 있었고
8시간 동안 엄청난 집중으로 스피킹을 했으며
그것도 부족해 혼자 자율학습도 밤늦게까지 하며 정진했다.
드래곤 길들이기는 영어 자막으로 30번 이상을 반복한 시점에서
더이상 얼마나 더 봤는지 세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전반적으로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다.

영어로 수다를 떨며 새로운 인격을 쌓아가는 느낌이 들었고,
몇년간 못했던 한을 이렇게 풀 수 있어 기뻤다.
자전거 타는법을 배운 것 처럼,
한국으로 도착해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며,
앞으로 내 인생에 영어는 걸림돌이 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블로그에 쓰는 글이라 그럴듯 하게 포장하는게 아니라
진짜 그 순간 그렇게 생각을 했다.

 

 

Q3. 만약 로버트처럼 시간당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한다면, 이어서 무급으로 일하게 된다면
당신은 단계별로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일단 나는 그 회사에 입사도 안할 것 같지만, 입사했다는 가정하에 생각해보겠다.

응. 퇴사.
이직 ㄱㄱ


내 직장생활로 생각해보면,
나는 첫번째 회사에서 세번째 회사로 가는동안 연봉이 천만원 하락했다.

그건 내가 좀 바보같은 부분이 있어서 였는데,
회사가 인센티브가 없다는걸 말안해준 부분도 문제 였지만,
나는 회사 업무에는 자신감이 충만해서
내가 내 능력을 보여주면서 1년뒤에 회사에 내가 잘한 만큼 연봉을 인상해달라고 요청하면
그게 쉬이 될 줄 알았다. ㅋㅋㅋ


그치만 철밥통 같은 외국계회사에서 그건 대다수의 직원에게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고
그 천만원을 회복하는데 한 4~5년은 걸린 것 같다. 하하...

나는 내 연봉에 분노했지만 굴복했고, 포기하고 회사에 순응했다.
그리고 연봉은 얼마든 상관없다며 내 능력을 올리는게 중요하다며
업무를 향한 불타던 내 열정도, 점점 식어갔고
지금 생각하면 반짝반짝 빛나던 나의 업무 능력 또한 어느 순간 정지 시켜버렸다.

Q4. 대부분의 사람들을 일하게 만드는 요인이 두려움이라는 말에 동의하는가?
만약 당신을 일하게 만드는 다른 요인이 있다면 적어 보라.

두려움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두번째 회사에서 세번째 회사로 이직하기 전, 나에게는 내 사업을 꾸릴 기회가 있었다. (반쯤 내꺼?)
두번째 회사는 해외영업 회사였는데, 주요 거래처인(매출처, 고객) UAE 업체의 사장인 J 가
내가 맘에 든건지 뭔지 쥐뿔도 없는 나에게 한국 지사를 내보지 않겠냐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요청한 것은 한국에 지사를 세우고 한국과 일본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세번째 회사에도 합격했던 터라, 나름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세번째 회사는 내 첫번째 회사의 경쟁사 같은 곳이라, 내가 이미 아는 일들의 연장선인 곳이었다.

UAE 업체 사장 J 가 요청한 일은 내 두번째 회사에서 하던 Sourcing 과 관련한 것이 었는데,
나는 해외영업부에 들어간지 2~3개월 밖에 안되었고,
첫 회사는 한국고객을 상대하고, 외국은 주로 다른 지사 동료나 Vendor 와 연락했다면
두번째 회사는 고객은 해외에 있고, Sourcing 은 한국에서 하기 때문에 반대 되는터라
경험이 적다보니 덜컥 겁이 났다,

나의 두려움


1. 경험도 적은 나에게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걸까? 혹시 사기치는 건가..?

2. Sourcing 을 하려면 현재 회사의 vendor 들 정보를 베이스로 시작 할텐데,
2~3개월 밖에 안된 내가 사장님을 배신하는 상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는건 아닐까?

3. 세번째 회사에 붙었는데, 여기는 외국계이고 네임밸류도 어느정도는 있어.
알지도 못하는 작은 UAE 업체의 지사를 차리겠다고 깝치다가 내 커리어 폭망하는건 아닐까?

4. 내깟게 그걸 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며, 8년전의 그 업체 이름이 놀랍게도 불현듯 떠올라서 구글링을 해보았다.
과연 아직 있을까 하며 말이다.
와...! 별점은 5점에 가깝고, 회사 내부도 번듯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그 회사는 건재하다.

두려움에 대한 분석


나의 두려움을 분석해보았다.

1. 나는 경험이 적어도, 영어라는 첫번째 무기가 있었다.
당시 그 판에서 영어회화로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열정이 있는 직원이라, 아마 그게 티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자진해서 회사 영문 소개서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아무도 안가르쳐 줬지만 대본을 만들어서 해외 업체에 cold call 을 돌리고 했으니까.
(지금도 못할 것 같은 일이다.)
내가 가진 그 장점을 본 것 아닐까?

그리고 그 업체는 주요 매출처였다. 즉 돈이 있는 업체다.
돈이 있는 업체가 나한테 뭣하러 사기를 칠까 쥐뿔도 없고 돈도 없는 일개 직원에게서
얼마나 뽑아먹을 수 있겠는가.

그 회사는 다른 모든 해외 매출처 중에 탑급으로 일도 꼼꼼히 잘하는 회사였다.
잘 굴러갈 회사였는데 뭐하러 빼낼것도 없는 나에게 사기를 치겠는가.

2. 나는 단 한번도 Sourcing 하는 공장 밀집지역에 방문한 적이 없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그냥 버스 타고 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잔뜩 있었는데.
현재 회사의 vendor 정보를 바탕으로, 근처에 가서 비슷한 걸 수급해도 되는거고,
그 회사를 contact 해도 되는것이다.
어차피 그 vendor는 나에게 현재 회사에 공급하는 가격보다 싸게 주진 않을 것인데,
그럼 나는 근처의 다른 vendor 를 찾아보면 되는 일이었다
.

3. 네임밸류가 뭐가 그렇게 의미가 있다고.. 대단한 네임밸류도 아니었다.
그냥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곳에 다니고 싶었고, 편한 길을 택하고 싶었던 것이다.
도전은 무서우니까.
왜냐면 실패할 것 같으니까.

4. 내깟게...하지만 내가 못할건 뭔가. 하고자 생각하면 길이 보이고, 찾고자 하면 길이 찾아진다.
나는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찾을 생각도 없었던 것이고.

맞다. 두려움은 내가 편한길에 서있도록 한다.


내가 일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은 '안주' 이다.

세번째 회사에서 연차를 쌓아가며 나는 회사 다니기가 그 전보다 편해지기 시작했다.
워라밸도 만족스러웠다. 연봉은 조금 더 높아져서 좀 더 소비해도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었다.
그러자 회사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 귀찮아져 버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워라밸이 좋으니, 정시에 퇴근해서 집에서 자기계발도 하고 좀 더 내 삶이 윤택해지는데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어느정도는 그러했다.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정도는 살도 뺏으니까.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어떤 도전이나 자기계발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편안한 생활에 젖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글이 길어져 나머지 4개의 질문은 다음 포스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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